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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커. 본문
호아킨 피닉스의 대단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조커는 참 혼란스러운 영화다.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연기한 히스레저는 잠시 잊게 만드는 호아킨 피닉스의 뛰어난 연기가 정말 빛나는 영화인데, 끝나고나니 이 영화를 도데체 뭐라고 말해야 될지 감이 안온다. 재미있었냐 재미없었냐 하는 말로 이 영화를 구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. 장르가 어떻건 간에 영화가 추구하는 재미라는건 어느정도의 공통분모를 갖는 법인데, 이 영화는 과연 그런 잣대로 판단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.
그렇다고 또 재미 없는 영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. 러닝 타임 내내 보는 사람의 긴장감의 끈을 그토록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영화는 또 없을 것이다. 본래 조커는 워낙 유명한 캐릭터이기도 하고, 난 원래 영화를 볼 때 스스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려는 버릇이 있는데다가 번역의 질 문제로도 말이 많던 영화라 그런 면을 좀 집중해서 보려고 했는데, 어찌나 영화의 긴장감이 대단하던지, 그런걸 신경 쓸 틈도 없이 영화가 끝나 버렸다. 끝나고 나오면서도 내가 도데체 뭘 본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. 보통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 영화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, 그런 글들을 읽어보아도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. 호아킨 피닉스도 이 조커가 도데체 어떤 인물인지 감을 못잡겠다고 했다지.
그건 아마도 조커가 상업 영화이기보단 예술 영화에 좀 더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. 예술 영화가 구체적으로 뭘 지향하는지는 잘 몰라도, 덩케르크를 보고 났을 때도 이런 기분이 들었다. 굳이 따지면 덩케르크는 조금 지루했지만. 여태까지 코믹스를 주제로 한 요새의 영화 트렌드랑은 달리, 이 영화는 DC 유니버스와는 무관한 별도의 영화로 만들어졌기에 마냥 우울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, 마냥 잔인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, 마냥 서스펜스나 스릴감이 넘치는 영화도 아니고, 마냥 메세지를 던지는 영화도 아닌, 도무지 한 두가지의 단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영화가 잘 완성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. 그렇기에 코믹스 원작인 영화 최초로 황금 사자상도 받았을 테고.
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,2악장과 쇼팽의 녹턴 13번을 들었다.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, 어떤 느낌인지를 묻는다면 그 두곡을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. 마음 한 켠의 깊은 구석에서 우울하면서도 어두운 뭔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조커를 클래식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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